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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마음 반반저장소
예술전공자가 에꼴42 입학하기 (온라인 테스트 부터 라피신까지) 본문
어쩌다 코딩의 세계로..
나는 지난 14년 동안 개발자와는 전혀 다른 직업에 종사했다. 바로 연극 창작. 한국에 잠시 체류하면서 연극 활동을 하던 나는 2021 성남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진행하는 SW교육전문가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기서 어린 친구들을 교육할 수 있는 여러 기초 프로그램들을 배우게 되었고, 이때 처음으로 코딩에 흥미를 느꼈다. (가르치는 흥미보다 내가 직접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는 그 떨림을.. 처음 느껴보게 된 계기였다!)
코로나 시대. 30대로 접어들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내가 사랑하는 예술로 스스로가 바라던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나는 팬데믹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열심히 창작 공연을 올렸는데, 그 과정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과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 9개월 간의 오랜 고민 끝에 예술활동을 멈추고 평생에 처음으로 나에 초점을 맞추기로 결심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이 질문을 아마도 처음 스스로에게 던져 봤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 인생 전체를 바꿔버릴 새로운 생각들로 가득 찼다. 아래의 글은 실제로 내가 마음을 다잡았을 때의 일기이다.
14년간 익숙하고 설렜던 일이 마음에서 점차 멀어지면서, 처음으로 진정한 행복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지난해부터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찰,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겨버리는 지속적 딴짓 중이다. 풀밭에서 네 잎 클로버를 찾는 친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즐기던 행복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 그리고 성취에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자극이 아니었을까. 열정이 탈피되고, 스스로의 모습이 내가 상상했던 나비가 아니었을 때.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온전해지길 갈망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유의 계기는 지쳐버린 몸과 머리, 너덜너덜해진 마음의 상태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몇 개월 즈음이 흐르자, 점차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나는 오늘날 나에게 <행복하다는 상태가 무엇인지> 명백하게 따져봐야 할 필요를 느꼈다. 자본주의 시대에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법. 모든 이들의 인생은 첨예하게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나눔과 향유를 좋아하기에, 이것을 앞으로의 행복을 상상하는 큰 초석으로 삼고 싶다. 또한 단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자극적 행복도 놓치지 말아야지. 내가 욕망하는 것과 인생에 필요한 것들의 균형을 맞추고 싶다.
나의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니, 그 경험의 가치가 대단했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정말 많이 배우고 성장했구나.
마인드가 바뀌고 비전을 재수정한다는 것은 인생의 새로운 장막이 열리는 것 같다.
ACT 1 끝, ACT 2를 위해!
나는 결국 30대 초반에 새로이 시작하는 인생을 선택한다. 다양한 시도와 새로운 일거리로 푸푼 꿈을 꾸게 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에꼴 42의 시험을 보는 일이었다. 파리에서 알바를 하면서 만난 챈선배. 이미 파리 42의 학생이었던 그는 나의 호기심을 보고 라피신에 응시할 것을 권유한다. 나는 에꼴 42가 정말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이유는 바로,
1. 교수나 수업이 없이 내가 자율적으로 프로젝트를 운용한다.
2. 동료들 간의 혹은 구글(?)과의 P2P (peer to peer) 방식으로 교육한다.
3. 다양성을 존중하고 직업 현장으로 이어지는 커리큘럼으로 이어져 있다.
4. 학비가 무료다!
온라인 테스트
나처럼 새로 무언가를 부담 없이 시작하기에는 아주 좋은 조건의 학교였다. 나는 그날 바로 집에 가서 인터넷 검색도 주저 없이 시험 삼아 온라인 테스트를 치러 봤는데.. 정말 다행히 상위권으로 패스를 했다. 여러 가지 온라인 테스트 관련 꿀팁이 인터넷에 깔렸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시험을 보다니. 바보가 따로 없다. (몇 레벨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 블로그를 시작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 온라인 테스트를 아직 안봤다면 무조건 구글링 하시고 보시는 걸 추천한다. 꼭 넘겨야 하는 미니멈 레벨도 있다.
학교 방문하기
이렇게 온라인 테스트를 마치면 라피신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한국말로 검색해 보고 미리 들어가신 챈선배에게 이래저래 물어보니 한국의 김영웅 피켓팅만큼 피신을 신청하는 게 어렵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름 긴장을 하고 있었다. 아. 온라인 테스트에 합격한 사람들은 학교를 둘러보고 피신 기간을 신청하게 된다. 학교 투어를 마치고 학교 강당(칸타나)에 앉아서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을 때였다. 어떤 학생이 "그럼 피신은 언제부터 신청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에꼴 42 교장(Directrice) 슨생님은 "간담회가 끝나고 열릴 겁니다."라고 대충 대답을 했다. 그러고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을 때 교장슨생님과 크루가 중얼거리는 걸 앞에서 얼핏 듣게 되었다. "그냥 지금 열까?" "그래 그냥 열자." 그러곤 크루슨생님이 컴퓨터로 뭔가 타다닥 탁탁 거리는 걸 보았고, 나는 혹시나 해서 그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아니 이럴 수가.. 정말로 피신 신청 페이지가 열러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호다닥 2022년 첫 번째 피신을 클릭했다. 나중에 챈선배에게 썰을 늘어놓으니 이렇게 대답했다. "Bienvenue Ecole 42!(에꼴 42에 온 걸 환영해!)"
라 피신
그렇게 나는 2월 한 달간의 라 피신을 거쳤다. 한국 학생들은 라피신이라고 하더라. 불어로 La Piscine(라 피신)은 수영장이라는 뜻이다. La(라)는 여성형 명사 앞에 붙는 관사, The라는 뜻. Piscine(피신)은 불어로 수영장이라는 뜻이다. 라피신의 의미는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을 물속에 빠뜨려 서로 구제하며 성장하라는 잔인한 뜻이다.. 실제로 클러스터 앞에는 수영장 표시가 붙어있다. 그리고 클러스터 앞에는 구명 튜브가 비치되어있다.. (피신러로써는 굉장히 얄미운 부분)
피신을 시작하기 전에 정말 많은 블로그 포스팅들을 찾아보며 관찰했다. 물론 나는 한국 커뮤니티 이야기들을 많이 보았는데, 그 이유는 한국인들이 정말 상세하게 모든 걸 잘 설명해 놓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된다. 프랑스 친구들도 한국인 설명 최고라고 했음.)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미궁에 빠졌고 뭘 준비해야 할지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누구는 코딩도장을 보라 그러고 누구는 리눅스를 알고 가라 그러고.. 피신을 앞둔 3개월 동안 닥치는 대로 읽고 습득했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컴퓨터의 기본조차 모르는 나는 근본적인 질문에 계속 부딪혔다.
파리 피신에 온 친구들은 대체적으로 정말 젊은 친구들이 많다. 그리고 40대 이상도 몇몇 있다. 챈선배 말로는 2월 피신이 잘하는 친구들이 많고 하반기 피신에 비해서 많은 학생이 선발된다고 한다. 그리고 피신 재수생들도 꽤 되었다. 친구들과 에발(evaluation)을 할 때면 그들이 뭘 하다 왔는지 서로 셰어 하곤 했는데, 컴퓨터 전공한 친구들, 금융을 공부한 친구들, 아얘 대학을 가지 않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온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있으신 분들 중에서도 컴퓨터에 밝은 사람들도 많았다. 에꼴 42는 아무런 프로그래밍 경험이 없는 사람이 피신을 봐도 무방하다고 했지만, 나는 이런 친구들을 보면서 증~말로 자주 현타가 왔다. 특히 수학과 친구는 진짜 얄미울 정도로 꼴 보기 싫었는데 왜 이렇게 되냐고 물어보면, 왜 이게 안되냐고 할 정도였다.. (이 친구는 피신 끝날 때까지 1등이었고, 지금도 1등이다..) 나는 평생 연극만 해서 수학적, 컴퓨터적, 논리적 사고가 전혀 안 돼있던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서클을 확장시키면서 기본적 개념에 항상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되더라.
피신을 하면서 눈치만 보면서 클러스터에서 하루종일 보내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루틴을 정해서 충분히 휴식할 시간을 마련했다. 아침 8시에 학교에 가서 6시에 나오기, 정말 힘들면 그냥 하루 쉬기. 그리고 나는 연극을 했던 장점을 살려 협업을 하거나 물어보거나, 피시너(Piciner)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만의 이해방법과 이미지로 구현해 노트하는 습관을 길렀다. 무대에 코드를 펼쳐놓듯이 큐사인 대로 코드 순서를 정렬하는 방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러쉬는 둘 다 통과하지 못했지만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세 번째 러쉬는 마지막 시험에 집중하기 위해 신청하지 않았다. 여담으로 러쉬를 하면서 클러스터 여기저기에서 왈왈왈 싸우는 소리도 가끔 들었다.
나의 성적표
- C08까지 패스, C09는 fail
- 첫번째 시험 48 시험조차 시작 못하고 30분 후에 1/3이 퇴장했다.
- 두 번째 시험 32 2-3명이 시험 시작 못하고 퇴장했다.
- 세 번째 시험 28 혼자 초상집..
- 마지막 시험 54 3번째 문제 atoi에서 어이없이 2시간 털리고 마지막 30분에 54점까지 끌어올렸다. 혼자 앉아서 울고 있다가 2시간 있다 생각났다.. 절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 것..
합격 발표
그리고 한 2주 뒤쯤 합격 메일이 온다. 친했던 친구들이 많이 붙지 않아서 꽤나 섭섭했다. (사람만 좋다고 붙여주지 않는 그들.. 코딩 몰라도 된다매..) 그중에서는 이미 프로그래밍을 했던 친구들도 있었고 안 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우리끼리 낸 결론은 최종 마지막 시험과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는지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리고 피신을 다시 보는 친구들은 인기투표에 목을 맸다. (시험 내내 친절했던 친구들이 학교 들어가니까 완전 쌩을 까던데.. 투표 점수 얻을라고 그랬던 것 같다.) 피신 동안 열정 있게 긍정적으로 돌아다니던 대다수의 친구들은 다시 입학식 때 다 보게 되었다. 그리고 파리 42는 다양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외국인, 여성, 나이 드신 분들의 비율을 고려해 학생을 선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운 좋게 아슬아슬하게 입학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마치며
이놈의 학교는 교수도 없고 수업도 없는 대신 일정 기간 안에 프로젝트를 제출하지 않으면 퇴학을 시키는 블랙홀이라는 제도가 있다. 나는 지금 겨우겨우 블랙홀을 피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다시 피신을 생각해 보니 그때의 열정이 생각나는 것 같다.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정말 하나도 모르겠고 힘들었지만, 프로젝트 3개를 끝내고 나니 어떻게 공부하고 접근해야 하는지 어느 정도 감이 오는 것 같다. 앞으로도 프로젝트를 하면서 잊지 않도록 기록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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